남해대교가 있기 전까지 남해도는 600m의 노량해협에 의하여 육지와 분리가 되어있는 섬이었습니다. 그에 따라서 산업, 경제 등 모든 면에서 육지지역에 비하여 불리한 여건에 놓여져 있었습니다. 문제는 이 곳이 수심이 깊고 조류가 빨라서 교량 가설 여건이 최악이었다는 것이지요. 즉, 일반적인 교량을 놓기에는 여간 부담스러운 곳이 아닐수 없었습니다.
경제적인 면이나, 미관적인 면에 있어서 단경간 교량은 타당성이 잘 나오지 않는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장경간 교량, 현수교를 놓기로 하였습니다. 하지만 당시 현수교는 우리나라에서 가설할 역량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68년도에 일본인 교량기술자 2명을 초청하여 타당성 검토를 시작 하였고 같은해에 국회를 통과하였습니다.
이 교량은 순수하게 우리나라 돈으로 지어진 교량이 아닙니다. 69년도에 차관을 통하여 지어진 교량이었습니다. 기술적인면 경제적인면 거의 대부분을 일본에 의지한 교량이었습니다. 그때 기술은 설계는 죠다이, 시공은 니폰스틸에 많이 의지하였다고 합니다. 근처에 시공중인 제2남해대교가 몇가지 자문을 제외하고는 순수 한국기술(GS건설)로 시공이 되고있는것과 참 대조적이죠. 제2남해대교는 설계(진우)는 물론이고 시공(GS건설, 관수엔지니어링)까지 우리나라 기술이 들어가 있습니다.
남해대교 건설당시의 현수교 트랜드는 트러스 보강거더 구조였습니다. 하지만 남해대교는 유선형 박스구조 타입입니다. 풍하중이 쎄기 때문에 공기역학을 충분히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케이블 시공은 AS공법에 의하여 가설이 되었습니다. AS공법은 케이블을 다발로 시공을 하는것이 아니라 몇가닥씩 시공을 하는 방법입니다. 공사기간이 증가하는 단점이 있지만 가격적인 측면에서 유리한 공법입니다. 304개의 소선이 모여서 1개의 다발(스트랜드)를 이루고 7개의 다발이 모여서 직경 258mm(래핑후)의 케이블을 구성하게됩니다. 당시는 기술력 때문에 소선의 인장강도는 1,560MPa 이었습니다.